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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te: 2020년 October 28일 Categories: 미분류

[파이낸셜뉴스]

프리드먼 사장(왼쪽)과 로버츠 감독.
프리드먼 사장(왼쪽)과 로버츠 감독.

LA 다저스가 32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다저스는 28일(한국시간) 텍사스주 알링턴 구장서 벌어진 월드시리즈 6차전서 탬파베이 레이스를 3-1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다저스 유격수 코리 시거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이어 월드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겹경사를 누렸다. 다저스는 지난 10년 동안 무려 20억 632만 달러(약 2조 3290억 원·스포츠 알마낙 제공)의 선수 연봉을 쏟아 부었다. 이는 뉴욕 양키스(21억 1500만 달러)에 이은 전체 2위에 해당된다.

그러고도 번번이 월드시리즈 문턱에서 좌절해 왔다. 다저스의 우승은 LA라는 빅 마켓을 배경으로 삼은 구단의 아낌없는 투자와 야구단 운영의 천재 앤드류 프리드먼 사장(44)의 합작품이다.

프리드먼 사장은 2015년 다저스로 옮기기 전 탬파베이의 단장을 역임했다. 자신을 명 단장으로 키워준 구단에 비수를 꽂은 셈이다. 프리드먼 사장의 이력은 재미있다. 대학시절 어깨를 다쳐 야구를 그만 둔 프리드먼 사장은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월스트리트 투자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05년 탬파베이 구단에 입사했다. 이후 2008년과 2010년 탬파베이를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에 올려놓는 등 만년 하위 팀을 강팀으로 변모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로 인해 프리드먼은 빌리 빈(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브라이언 캐시먼(뉴욕 양키스) 테오 엡스타인(시카고 컵스) 등과 함께 메이저리그 최고의 단장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15년 스몰 마켓인 탬파베이를 떠나 LA 다저스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프리드먼은 다저스에 오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진가를 발휘했다. 부임 이듬해 다저스 역사상 최초로 흑인인 데이브 로버츠 감독을 사령탑에 선임했다. 최초로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용한 다저스는 감독만은 백인에게 맡겨왔다.

로버츠 감독은 흑인 병사와 일본(오키나와) 여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다. 하지만 미국의 인종 분류상 그는 흑인으로 불린다. 프리드먼은 지난 해 가을 야구서 또 다시 무너진 로버츠 감독을 재신임해 마침내 정상으로 이끌게 만들었다.

프리드먼은 올 해 보스턴에서 데려온 무키 베츠에게 12년 3억 6500만 달러 초대형 계약을 안겨주었다. 베츠는 월드시리즈 6차전서 결정적 활약으로 보답했다. 0-1로 뒤진 6회 말 1사 1루서 바뀐 투수 닉 앤더슨에게 2루타를 뽑아냈다.

다저스는 이어진 1사 2,3루 기회서 투수 폭투와 MVP 시거의 내야 땅볼로 역전에 성공했다. 베츠는 한 점차로 앞선 8회 좌중월 솔로 홈런을 터트려 승부에 쇄기를 박았다. 몸값 4000억 원의 귀하신 몸 베츠는 다저스의 32년 우승 한을 푸는 일등 공신이 됐다.

탬파베이는 2008년 이후 두 번째로 월드시리즈에 올랐으나 호화 군단 다저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20년 다저스의 선수 연봉 합계는 1억 791만 달러. 이는 양키스(1억 943)에 이은 2위에 해당된다. 탬파베이는 2829만 달러로 전체 30개 구단 가운데 28위에 그쳤다. 탬파베이는 적은 투자로도 아메리칸 리그 최고 승률(0.667)을 기록했다. 다저스는 3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7할(0.717)을 넘겼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12년 누빈 ‘전주성’서 은퇴 기자회견 “몸은 건재…정신 약해져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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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28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 현대 이동국 선수가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warm@yna.co.kr

(전주=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K리그의 전설’ 이동국(41·전북 현대)은 2009년 전북에서 첫 우승을 일군 기억을 23년간 이어온 선수 인생 최고의 기억으로 꼽았다.

반면,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나서지 못하는 등 두 차례에 걸친 ‘월드컵 불운’은 그에게 최악의 기억이면서 ‘보약’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동국은 자신이 12년간 누빈 ‘전주성’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28일 은퇴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50여 분 동안 담담하게 축구 인생을 정리했다. 다만, 아버지와 관련한 말을 할 때는 잠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동국은 38년 K리그 역사상 ‘최고’라고 불릴 만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전북 유니폼을 입은 뒤로는 K리그 우승 7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등을 함께 하며 ‘제2의 전성기’를 보냈다.

국가대표로도 굵은 족적을 남겼다.

월드컵에 두 차례 출전하는 등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105회(역대 10위)에 출전해 33골(역대 공동 4위)을 넣었다.

이동국이 프로 무대에 뛰어든 이후 각급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지금까지 뛴 공식 경기 숫자는 총 844경기이며 통산 득점은 344골이다. 둘 다 역대 한국 선수 중 최고 기록이다.

하지만 늘 웃기만 한 건 아니다.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으로부터 외면받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TV로 지켜만 봐야 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는 무릎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했다.

두 차례 해외 진출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달렸고, 결국 누구보다 오래, 행복하게 그라운드를 누빈 선수가 됐다.

그는 “좌절할 때마다, 나보다 더 크게 좌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보다는 내가 행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전북은 주말인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대구FC와 K리그1 시즌 최종전을 치른다. 전북의 통산 8번째 우승을 확정할지도 모를 이 경기가 이동국의 마지막 경기다.

다음은 이동국과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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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28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 현대 이동국 선수가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warm@yna.co.kr

— 은퇴 결심 이유는.

▲ 많은 분이 부상 때문에 그만둔다고 짐작하시겠지만, 몸 상태는 (회복해서) 아주 좋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생각해왔다. 예전에는 부상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장기 부상으로 하루하루 조급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좋은 몸 상태가 아닌데도 욕심내서 (경기에) 들어가려고 했고, 사소한 것들도 서운해했다.

몸이 아픈 것은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이 나약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 오래 한 끝에 은퇴를 결심했다.

— 떠나는 기분은 어떤가. 현역 생활을 길게 한 비결은.

▲ 만감이 교차한다. 서운한 느낌도 있고 기대되는 것도 있고…. 지인들이 전화해서는 ‘1년 더 뛰어도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

멀리 보지 않고 바로 앞 한 경기만 바라보고, 후배들 앞에서 솔선수범하며 생활하다 보니 내 나이를 잊어버렸다. 지금도 내 나이를 들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프로 선수라는 직업은 선후배를 떠나 ‘경쟁’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프로에서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이다.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장점을 만들면 프로에서 롱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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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다음 달 1일 프로축구 K리그 최종 라운드를 끝으로 23년 현역 생활을 끝내는 이동국의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 당시 슈팅 장면.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에 출전했을 때가 19세 52일로, 역대 한국 선수 최연소 월드컵 출전 기록을 갖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 다섯 개씩 꼽아달라.

▲ 두 개씩만 꼽겠다. (웃음)

포항에서 처음 프로 유니폼 받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구단에서 33번과 내 이름이 마킹 된 유니폼을 선물로 줬을 때도 떠오른다. 그때 며칠 동안이나 그걸 입고 잤다.

프랑스 월드컵 이전에 내가 한국 축구계의 가장 큰 이슈였다. 그때 기억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하루하루가 기뻤던 순간이다. 2002년 월드컵 경기에 내가 무조건 있으리라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2009년 전북에 입단해 첫 우승컵을 들었을 때도 최고의 순간이다.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간이 아닐까.

2002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을 때…. 그때의 기억이 오래 운동을 할 수 있게 한 보약이 된 것 같다. 잊지 못할 기억이다.

2002년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2달은 남기고 부상으로 놓쳤을 때가 가장 아쉽다. 너무 힘들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 좌절을 이겨냈기에 더 크게 빛나는 선수가 됐다. 지금 이 순간 좌절을 겪고 있을 사람들에게 조언 부탁한다.

▲ 좌절할 때마다, 나보다 더 크게 좌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보다는 내가 행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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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다음 달 1일 프로축구 K리그 최종 라운드를 끝으로 23년 현역 생활을 끝내는 이동국이 독일전 당시 발리 골을 넣고 기뻐하는 모습. A매치 105경기에 출전해 33골을 넣은 이동국은 이중 발리슛으로만 6골을 성공했다. ‘발리 깎는 장인’은 이동국의 또 다른 별명이다.[대한축구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유독 멋진 골 장면을 많이 연출했다. 최고의 골은.

▲ 독일과 평가전에서 넣은 발리슛 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발이 공에 맞는 순간의 임팩트, 그 찰나의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 불멸의 기록을 많이 세웠다.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은.

▲ 내가 뛴 공식 경기가 800경기가 넘는다는 걸(844경기) 오늘 아침에야 알게 됐다, 1, 2년 잘해서는 만들 수 없는 기록 아닌가. 10년, 20년 꾸준히 잘했기에 가능한 기록이다. 좋은 경기력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 기록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손흥민을 제외하면 이동국 이후에 걸출한 토종 공격수가 잘 나오지 않고 있다.

▲ 아시아 리그에서 스트라이커로 살아남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모든 팀이 외국인 공격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성적과 바로 연관이 되는 포지션이어서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좋은 스트라이커를 키우려면 출전시간을 보장해주면서 구단이 계획을 세우고 키워야 한다. 나도 실력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차근차근 성장하면서 외국인 선수와 경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그래도 최근 21세 이하 선수 의무 출전 규정이 잘 자리 잡아서 아마 5~10년 안에는 대형 스트라이커가 나올 것 같다.

‘오버 42세 룰’이 생기면 내가 1년 더 현역 생활을 할 생각이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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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28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 현대 이동국 선수가 은퇴 기자회견 후 자신의 휴대전화로 기자회견장을 담고 있다. warm@yna.co.kr

— 최강희 감독은 본인에게 어떤 분인가.

▲ 쓸쓸하게 은퇴하는 선수가 많다. 이렇게 많은 분(취재진) 앞에서 떠날 수 있게 해주신 분이 최 감독님이다. 평생 감사드리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 23년 동안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파트너는 누구였나.

▲ 한참 고민해야 하겠지만, 김상식 코치님은 꼭 넣어야 한다. 20년간 알아 왔고, 특히 2009년 전북에 함께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많은 것을 배웠다.

2009년 우승 당시 멤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에닝요, 루이스…. 당시 전북은 우승을 바라볼 수 없는 팀이었는데, 똘똘 뭉쳐서 좋은 경기를 해 우승을 이뤄냈다. 당시의 전북 공격진이 (내가 경험한) 가장 강한 공격진이 아니었을까 싶다.

— 전북이라는 클럽은 어떤 의미인가.

▲ 포항에 가면 길 안내 내비게이션을 켠다. 전주에서는 그냥 운전한다. 전주가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이다. 전북에서 얻은 것이 너무 많아서,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전주 팬들을 보면 그냥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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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28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 현대 이동국 선수가 은퇴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warm@yna.co.kr

— 앞으로의 계획은.

▲ 일단 대구전만 생각하고 있다. 그 이후에 뭘 할 때 내가 가장 행복할지 고민해 보겠다. 쉬면서 축구 외에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찾는 시간도 가지려고 한다. A급 지도자 과정 밟고 있지만, 아직 지도자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 참 오랜 시간 칭찬도 많이 듣고 비난도 많이 받았다. 힘들 때 도와준 분은.

▲ 안티 팬들조차 내 팬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땀 흘러왔다. 어젯밤 늦게까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눴다. 30년 넘게 축구선수 이동국과 함께하신 아빠도 은퇴하신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가슴이 찡했다. (한동안 울음) 부모님께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부모님 얘기만 하면 왜 눈물이 날까. 오늘 안 울려고 했는데 망했다.(웃음)

— 몸 상태가 완전치 않은 상태에서 2007년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다. 후회 안 되나. 그 나이로 돌아간다면 다시 하겠나.

▲ 그래도 그때로 돌아가면 도전했을 것이다. 해 봤으니까 이렇게 말도 할 수 있는 거다. 후배들에게도 해외 무대에 도전해 보라고 늘 얘기한다. 2005~2006년 몸 상태에서 갔다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 우승을 목전에 두고 치르는 리그 최종전이 은퇴 경기다. 어떤 각오인가.

▲ 뭔가 짜놓은 것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고 은퇴하는 선수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그럴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라면 얼마든지 울 수 있을 것 같다.

승점 3점을 가져오면서 우승하겠다. 동료들과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잘 준비하고 있다.

— 팬들께 남길 말은.

▲ 준비가 안 된 느낌도 든다.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너무도 감사하다. 마지막까지 골 넣는 스트라이커로 남겠다. 기대 저버리지 않겠다.

[스포츠조선닷컴 김수현기자] 그룹 AOA 출신 배우 권민아가 추측성 보도에 선을 그었다.

권민아는 28일 인스타그램에 “새 프로필 아니에요. 화보 찍었을 때 찍힌 거 있어서 올린 건데 기사가 엉뚱하게 올라갔네요…휴”라는 글과 여러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에는 화보 촬영 중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일에 열중하고 있는 권민아의 모습.

권민아는 이날 차로 어딘가를 향해 이동하는 권민아의 모습부터, 촬영을 하며 본업에 매진하는 모습까지 다양한 그의 일상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여러 매체에서는 ‘권민아가 새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며 추측성 보도를 했고, 이에 권민아는 곧장 SNS로 해명했다.

최근 권민아는 SNS에 “수면제를 먹어도 먹어도 잠이 안오네. 언제 아무 생각없이 두발 뻗고 편하게 잘수 있을까. 믿었던 사람한데마저 신뢰가 깨지고 나니 인간은 정말 뭘까 싶다. 다가가고 싶어도 만남뒤에 오는 불안감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한다”고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털어놨다.파워볼엔트리

그러면서 권민아는 “다 싫고 힘들구나. 아직은 그냥 좀 자고싶다”면서 “상담 잘해주시는 약도 잘 지어주시는 정말 좋은 정신과 선생님 혹시 없나요?”라며 정신과를 추천해달라고 덧붙였다.

권민아의 진심어린 고백과 고민에 팬들은 응원을 이어갔고, 권민아는 그에 화답하듯 밝아진 얼굴색으로 근황을 전해 팬들의 걱정을 덜었다.

한편 권민아는 지난해 5월 그룹 AOA를 탈퇴한 후 배우로 전향했다. 이후 지난 6월 과거 AOA로 활동하던 시절 멤버 지민으로부터 심각한 괴롭힘을 당해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지민은 팀 탈퇴 후 활동 중단을 선언, FNC가 사과하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현재 권민아는 권민아는 치료에 집중하고 있으며 지난달 26일 우리액터스와 계약을 해지 소식을 직접 전했다.

[뉴스엔 박수인 기자]

‘청춘기록’ CP가 종영 소감을 밝혔다.파워볼실시간

10월 27일 종영된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극본 하명희/연출 안길호) 마지막회에서는 사혜준(박보검)과 안정하(박소담)가 친구로 재회하며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청춘기록’은 마지막까지 청춘들의 꿈과 사랑 등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시청률에서도 유종의 미를 거뒀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8.7%(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유의미한 성적을 보였다.

‘청춘기록’ 김선태 CP는 “작업 내내 함께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던 작품이었기에 아쉬움 보단 만족감이 더 높은 작품이었다”며 “마지막까지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시청자분들께 감사드리고 함께 작업했던 작가, 감독, 배우, 그리고 모든 스태프에게 고맙다는 인사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특히 ‘청춘기록’은 박보검, 박소담, 변우석을 비롯한 모든 배우들의 현실 연기가 빛을 발했다. 시청자들은 대본을 현실감 있게 구현해낸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김선태 CP는 배우들의 연기 호평과 관련 “주조연 모두 단편적인 인물 없이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로 그려주신 작가님의 글, 배역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로 애정을 쏟아 연기한 배우, 현장에서 끊임 없이 배우들과 소통하는 감독님의 디렉팅, 이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작가, 배우,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한편 ‘청춘기록’은 현실의 벽에 절망하지 않고 꿈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들의 성장기록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tvN ‘청춘기록’)

범죄 수사 (PG)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범죄 수사 (PG)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인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흉기를 휘둘러 관리소장을 살해한 뒤 도주했다가 경찰에 자수했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인천시 서구 모 아파트 입주자 대표 60대 남성 A씨를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이날 오전 10시께 인천시 서구 연희동 한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관리소장인 50대 여성 B씨의 목 부위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범행 직후 달아났다가 1시간 30여 분만인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경찰서를 찾아 자수한 것으로 파악됐다.파워볼

B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숨졌다.

A씨는 B씨와 평소 아파트 운영 관련 문제로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인근 야산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며 “A씨를 상대로 범행 동기와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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